해외 거주하는 사람들은 고향향수에 목마름이 있다. 고향 하면 가을 들녘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코스모스처럼 아련한 정이 있다. 그래서 고국 드라마를 많이 본다. 하와이 방송이 다양하기 전에는 비디오 집에 가서 일주일에 한 번씩 빌려다 보기도 했다. 그것이 마약 같아서 이제는 빌려다 보는 일을 그만두었지만, 그리움에 목말라 하는 이민자들이다. 오래 살아도 고향은 아니다. 고향은 앞산에 진달래가 피고, 여름밤에 개구리 울고, 반딧불 쫓아다니고, 강가에 멱 감던 곳, 가을 들녘으로 감나무에 홍시가 달리는 그곳이 고향이다. 디아스포라가 되어 영원이 고향을 간직하고 살 것이다, 더러 그리우면 가슴속 깁이 있던 추억을 끄집어내어 놓고, 꺼이꺼이 울던 때를 그릴 것이다.
한국에서 뜬다는 드라마는 거의 다 들어오는 편인 하와이, 문화생활에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 지난주에 종영된 "그 여자가 무서워"를 재미있게 시청을 하였다. 처음부터 흥미진진하여 사건 전개가 궁금하고 기다려지게 만들더니, 마지막에는 끔직한 자살로 매듭을 짓는 것을 보고 너무 슬퍼 써늘한 바람이 일었다.
날 때부터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여자, 애인에게 버림 받은 여자, 자식에게도 버림 받은 여자, 그런 여자가 자기 자신에게도 버림 받아 ,그렇게 죽음을 끔찍하게 맞이하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작가님에게 그렇게 끔찍하게 죽이어야 합니까. 하고 묻고 싶었다. 우리는 축복 받아 이 세상에 태여 났습니다. 축복 받은 만한 가치 있는 인생이다. 그리고 축복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어 놓고 심히 좋았더라 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이 만드시고 심히 좋았더라 한 인간인 것이다. 그렇게 끔찍하게 죽이면, 그 여자는 저주 받고 태어났다는 결론인데, 어느 누가 하나님이 심히 좋았더라 한 작품을 저주 받고 태여 났다고 할 권리가 있나 묻고 싶다.
장애인들도 태어 난 것에 감사 하고 그들 나름대로 생을 즐기고 살아가고 있다. 자살은 죄의 행위이다. 누가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어떠한 형태든지 자기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창조주에 대한오만이다. 창조주만 생명을 거두고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요즈음 같이 이상한 문화권에 혼돈으로 무엇이 오른 지, 그른지 구분을 못할 정도로 혼탁 한데 자살을 합리화 시키면 어쩌나 싶다. 그런 경우 자살자가 많이 나올 수 있을 것 아닌가.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아픈 것보다 깨끗이 죽는 것이 낫지 하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하지만 생명은 내 것은 아닌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드라마를 시청 하였을 것인데, 자살로 끝을 내는 것 아닌 것 같다. 저럴 수가 있나 하는 마음이 온다. 그것도 상을 찡그릴 정도로 비참하게 죽게 하다니 작가는 인격이나 정서가 의심스럽다. 그냥 죽은 걸로 처리 하여도 되는데, 그렇게 리얼하게 보이다니 싶다.
또한 요즈음 보는 조강지처 클럽은 상스럽고, 천하다고 하게 느끼지만 그 대사가 재미있고. 즐겁다. 그걸 보고 나면 하하 웃을 수 있다. 대사마다 위트가 있어 좋다. 흔한 소재지만 재미있게 전개 하여 가는 것이 한여름 무더위에 청량제 같아서 좋다. 살아 있음에 축복이 알아 야 할것이다.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다움이요, 죽음은 어둠이요, 슬픔이다. 드라마 던지 소설이든지, 남기는 것은 살아 있음에 축복으로 이어져야 하지 않는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