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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 부르기 대회에 생긴 일

사빈 코스모스 2009. 11. 19. 10:22

우리 자녀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자

지난 11월 14일은 재 하와이 한인 학교 협의회에서 주최 하는 “제 9회 동요 부르기 대회” 개최 하였다. 이번 동요 대회를 준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아이들 가르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매주 토요일이니, 한 달이라고 하여도 네 번 뿐이고, 두 달이면 8번인, 아이들 한국어로 동요를 가르치려면 그 단어를 외워야 하고. 음정을 외워야 한다. 아이들은 4살서부터 11살 나이들인데, 어린 아이들이 더 많다, 아이들이 자라면 한국어 교실에 안 오려고 한다. 대개는 수업 후에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참 힘들다는 것을 보고, 가르치는 선생님이 위대하고, 존경스러웠다.

수업 후 12시부터 한 시간 가르치는데, 연습시키려면, 화장실 가는 아이, 물 먹으러 가야하고. 이유가 많아 정착 배우는 시간은 몇 번 안하고 한 시간이 간다. 이렇게 아이들과 씨름을 하고, 인사하는 법. 줄서서 들어가는 법을 해보고, 대회장에 가서 한번 강대상에서 서보는 연습을 했다. 다른 학교에서도 이렇게 하여 아이들이 동요 부르기 대회에 참석 하였을 것이다 . 합창은 다섯 학교가 나왔다. 독창은 열두 명이었다. 독창은 경쟁이 심한 것 같다. 합창은 큰 교회가 많이 빠졌다. 그 만큼 아이들을 합창 연습 시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주교 합창 팀이, 선물로 핑크 풍선을 어린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꼬마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나도, 나도 하며 받아, 나도 하나 받아 꼬마를 주었다.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는 것을 보니, 보기에 좋고, 흐뭇하였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우리 학교 합창에 나가고 독창 까지 할 네 살 진이가 받은 풍선을, 진이 아빠가 진이보다 더 어린 아이에게 풍선을 주었다. 이것을 본 진이가 울기 시작 했다. 엄마는 진이의 풍선을 받은 아이에게 살살 달래서 다시 받아 진이에게 주었는데 하필이면 그 풍선이 터졌다. 터진 풍선이 서러워 울기를 그치지 않았다. 합창 순서가 되어 진이도 강대상으로 갔지만 터진 풍선이 서러워 우느라고 노래 한번 부르지 못했다. 진이 엄마도 슬프고, 진이 아빠도 슬프고, 풍선을 받은 어린아이 엄마도 슬프고. 모두 슬퍼서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이날 반주자가 동요 악보를 교회에서 놓고 와서, 다시 교회로 가는 소동도 소리 없이 벌렸는데, 이번에는 진이가 울어서, 사모님은 울상이었다.

진이 엄마는 진이를 달래고 얼려서 8번째인 독창에 나갔다. 우리 쪽에서 바라보는 이 마다, 마음 조리며, 손을 비비고 있었다. 진이가 “ 주먹 쥐고 손을 펴서 ” 잘 불러 주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하고 여기 까지 살아왔다. 평탄 할 때는 생각이 안 나고, 꼭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은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내가 초등학교 때 학교 대표로 웅변대회에 나갔는데, 평소에는 원고를 달달 다 외웠다. 내 차례가 되어 나가서 앞만 보고 웅변을 하다가, 잠시 강대상 밑을 바라보았다. 전부 까맣고 눈동자만 말똥말똥 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자 달달 외웠던 것이 생각 안 나고, 머리가 멍해 졌다. 그 순간이 몇 년이 흐른 기분이었다. 초등학교 때 일이, 다른 것은 하나도 생각 안 나는데, 그 기억만 생생하다. 까만 눈동자들이 나를 쳐다보던 그 눈망울이 지금도 가슴 속에 남아 있다.

진이의 가슴 속에 한국어 교실에 공부하던 생각은 안 나지만, 옹달샘과 풍선이 터져 울던 생각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진이는 좋은 추억하나 만들었네.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 유년 뜰에 추억을 들추면 항상 흐뭇하고 아름다운 무지개 뜬다. 추억이 많으면 많을수록 각박한 생활 속에서 아름다움이 살아난다.

6,25사변 때 무주구천동에서 임자 없는 밤나무 산에 가기만 하면 한 자루씩 주어 오던 일이, 밤을 보면 생각난다.

우리 아이들에게 동요 대회, 글짓기 대회 같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들, 들로 산으로 갈 환경도, 여유도 없는 세대에 살고 있지만, 옹달샘 같은 동요가 있고, 푸른 잔디의 동요 대회에 아이들 참석하게 하여 그 아이들이 자라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옹달샘에서 퍼내는 추억이 있으면 팍팍한 삶이 윤기가 흐를 것이다 .

10월 달에는 글짓기 대회에 열렸다. 우리교회 한국어 학교는 작년에 시작하여 이제 한국어를 배우는데, 아들을 글짓기 대회에 내보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참석하고 싶다고 하여 같이 가서 삼등을 했다. 보내지 않겠다는 엄마가 제일 기뻐하고, 상을 탈 때는 온 가족이 나오셨다. 그 아이도 좋은 추억 하나 만든 것이다.

외국에서 고국의 정취를 만들어 줄 추억 그리 많지 않다. 우리 어머님들, 글짓기 대회나, 동요 부르기 대회 같은데 아이들을 보내서 그들이 고국을 떠오를 때, 동요를 부르던 추억과, 글 짖던 추억을 그려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지 못하여 권하고 싶다. 한국 학교는 한글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역사, 한국의 정취, 한국 사람의 성품, 기질까지, 배우는 것이다, TV에서 권마태 목사님이 2주면 한글을 뗄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것 나는 반대를 한다. 글자만 알면 무얼 할 것인가. 문화도 모르고, 정서도 모르고, 한국역사도 모르고, 그것들을 달달 외워서 알아 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교육이란 배우고, 익히고, 반복하고, 연습하여 배우게 되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알아 지는 것이 교육이 아닌 것을, 그러면 교육이라고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아름다운 추억 있으면 살아가면서 힘들 때 용기를 얻을 것이다. 할 수 있다 하는 주먹을 불끈 쥐는 삶으로 바꾸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