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무엇인가, 란 말이 입속에 뱅뱅 돌고 있다. 무엇을 위해 달려 왔을까. 그렇게 달려와 이 모습이 내가 보기에, 남이 나를 보기에, 어떻게 비추어 질까. 그러나 그것들에서 삶이 빠져 나간다다면 무엇이 남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맴돌고 있다 .
친지가 아프다고 얼마 못산다고 하면, 그때서야 내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같아 한번 씩 돌아보게 되는 제목이다 . 그것도 잠시다, 얼마 시간이 지나면 잊고, 아둥바둥 살아 고 있다. 사랑하고, 질투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 그리고 그리워 하고 , 이런 반복으로 일상으로 돌아간다 .
그런 것들을, 정리를 하면 다른 사람의 모습을 통해 너를 보라는 경고인가, 하기도 하지만 더러는 내게는 그런 경고가 없을 거야 하는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저 죽을 줄 모르고 구덩이 파네 하는 말이, 우리가 아닌가 싶다. 시행착오로 구덩이 속에 갇히어 허둥지둥 대다가 일어나는 사람도 있고 그 늪에서 아주 도태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주어진 삶만큼 살면 아무 탈도 없고 편안 할텐데, 그걸 어떻게 아는가 말이다. 내 몫은 이것만큼 금이라도 그어 준다면 그대로 따라서 살아 갈 텐데 하기도 한다.
왜 말리지 않했어, 하고 나중에 가슴 치며 물어 오지만 그거야, 한번 가보고, 안 되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 돌아 서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런 기회가 닥치면 다시한번 사고를 칠 것이다. 인간의 속성이 아닌가, 따먹지 말라는 것, 궁금하고, 따먹고 나면, 정말 그럴까 하고 호기심에, 해보는 일, 인간의 조상이 그렇게 했다.
가치관을 어디에 두는가에, 시행 착오하여도 돌아 서는데 힘들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시행착오가 건강일 때는 어찌 하는가 말이다 . 우리는 너무 많은 말속에 살아가고 있다, 요즈음은 묵상하고 자기를 돌아 볼 틈을 주지 않고, 계속 듣고, 보고, 채우는 작업을 한다. ,눈을 뜨면 라디오 틀어 놓고, 아니면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내 생각과 상관없이 달려가고 있다. 이제는 그게 습관이 되어 없으면 허전하다, 나를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그래서 장영희 교수님의 수필을 읽거나, 법정 스님의 산중 일기를 읽으면, 나는 무얼 하고 살았나 하게 된다, 요즈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있다. 걷는 시간이 침묵을 건너가고 있다. 거기다 쓰레기 까지 줍고 있으니, 온전한 침묵 하는 시간조차 빼앗기고 있는 것 같다 . 나를 돌아보아도 마음을 비워 두면, 안 되니 물어 보게 된다, 비워 둔 시간은 어떻게 메꿀까, 절절 매고 있다 무얼 하지, 할 것이 없는 것 같다 . 습관화 된 것이 고정 출연이다. 이런 세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 이럴 때 친지의 부고나 , 죽음에 임박 했다고 하면 그것도 잠시 서서 돌아보는 내 안이다. 이러다가 앞으로 세대는 무엇에 가치관을 두고 살까 싶어 진다.
지난 목요일 날 모임에서 그녀가 담담히 지금까지 해온 일을 정리하여 다음 분에게 넘기어 주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담담 할 수 있을까 , 나라면 어찌 할꼬, 하다가 서성거리다가 아까운 시간을 다 보낼 것 같다 . 의연하게 대처 하는 모습에 존경의 대상이 된다 평소에도 그러더니, 정말 난 사람이구나 . 뭐가 달라도 달라, 무섭지 않은가, 어둠이 저쪽 , 이승의 저쪽이. 그런 생각을 그의 얼굴을 보며 잠시 생각하였다.
20년 전에 교인 한분이 어찌어찌 하여 식당을 경영하게 되었다, 한국서 온 동생이 운전 면허를 막 따고 누나가 퇴근하면 픽업해 주었다. 그날도 운전석 옆에 큰아들 운전석 뒤에 그녀가 타고 그 옆으로 막내아들이 탔다. 술을 먹고 일방통행으로 질주 하는 차를 피하지 못해 정면충돌을 하고, 동생과 두 아들을 잃고 그녀는 몇 달만에 깨어났다. 그가 몇 달 만에 깨어나고 보니, 두 아들과 남동생은 죽고, 자기만 살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저주스러워 일년 반을 울며 하나님 원망하며 살았다. 그녀는 그래도 다행이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 막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여 열심을 내던 참이라 하나님은 없다라고 외치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꼻고 울기 시작하더니, 다시 소생하여 새 인생을 살았다 . 어려울 때 신앙이란 살아있을 수 있는 방패 아니던가, 조물주, 창조주 에게 기도 할 수 있다는 그 한가지만으로 위로를 삼을 수 있다 , 어려움을 겪는 이 마다 신앙으로 이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 내 신앙은 아플 때 안 아프게 해 주세요 , 힘들 때 살려 주세요 하고 울며 외칠 수 있다는 것이 보석 같은 선물이었다. 나만 가지는 보석 같은 선물 이다 .
아픈데 어찌 해볼 도리가 없으면 , 나 죽을 것 같습니다 , 살려 주세요 하면 아픈 것이 없어지는 경험을 했다 . 정말 그 사람이 미울 때 , 기도가 안 나올 때, 야베스 기도를 했다. 언제는 넉달 동안 그 기도만 했었다. 그러니 미움이 가셔지는 것 경험을 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목사님의 주일 설교에 힘들 때 야베스 기도를 오랫동안 했더니, 지경을 넓히어 주어 참 많은 사람과 좋은 인연을 가지고 있노라는 말씀을 듣고 나도 그랬는데 했다.
죽음이 눈앞에 올 때 , 인명은 재천이지만, 살고 죽는 것은 부르시는 분에 의해 가겠지만, 그래도 아픔의 고통은 면해 준다고 믿고 있다. 신앙인과 비 신안인과 틀린 점이 아픔을 어떻게 이기는지 다르다고 말한다. 누구도 한번은 간다 , 일찍 가는 사람도 있고 , 오래 살다 가는 사람도 있지만, 살다 갈 적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겨 지는 것이 소원일 것이다 , 그리고 남은 자들에게 고통스런 모습 안 보이고, 고은 모습으로 가는 것이 소원일 것이다 .
내가 존경하는 친지는 고운 모습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 그녀를 사랑 한 사람들에게 남겨 지기를 기도 한다 . 그 기도는 우리 모두 기도 제목이다 .
'사랑하는 것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망초 (Forget Me Not ) (0) | 2010.12.10 |
---|---|
아버님 묘소는 (0) | 2010.10.16 |
7월의 메모 (0) | 2010.07.18 |
고국을 방문을 하고 (0) | 2010.06.15 |
고국을 방문을 하고 (0) | 2010.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