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한국 가요 .
나 한국 간다
“어부 지리" 란 말이 있지요. 남편이 고국 방문으로 가시기로 되어 있는데, 74세인 남편은 안 된다는 규칙에 못 가시게 되고, 막 70세를 넘어 가는, 내가 대신 가게 되어 웬 떡인가 하는 심정이고, 벅찬 가슴이 쿵쿵 뛰었 지요
. 고국방문 설명회를 가질 때 연령 부분의, 질문과 해명이 많이 쏟아져 나왔으니, 아마도 다음에는 법이 개선 될 것 같아 당신도 희망 버리지 마소 하였더니, 믿음이 안 가는지, 웃는 듯, 마는 듯 하다. 그래도 곁다리로 같이 가서, 일정이 끝나고 나서 고국을 한번 돌아 보려고, 그래도 따로 나중에 와서 합류 하면 되지요 했더니, 약이 오르는지, “됐어” 한다.
내가 그이 몫을 빼앗은 기분이라, 좋기는 좋으면서, 미안하고, 좋아할 수가 없다. 들키지 않고 좋아하고 있다, 그러나 내 안에서는 나 한국 가요 , 외치고 싶다. 고국을 떠나 온지 35년이나 된다..
처음 방문은88년 여의도 순 복음 교회에서 실시한 제 1회 해외 재직 수련회에 참석하여 최 자실 목사 기도원에서 수련에 참석하고, 다음은 2003년 충청도 보령에 시비 세운다고 방문 하라고 하여 갔다고 왔다.
고국은 유년의 뜰이 거기 있고, 내 생의 근본이 거기에 있고, 내 뿌리가 거기에 있는데,
35년 산 하와이는 언제나 타향 살이다, 언제고 돌아 가야지 하고, 하와이 바다를 바라 보고 산 것이 이제 35년 되어가니, 희미해지는 고향이지만 내 근본은 거기이다, 남편에게 어머니 얼굴이 기억 나요, 물으니, “하도 오래 되어서” 말문을 덮는다.. 허긴 60년 세월이 지났으니, 기억이 나겠는가 싶다. 우리 아이들이 그럴 것 같다. 기억 속에 아련 할 것 같아 가슴이 아프지만 어찌하랴 , 왜 몰라 네가 난 곳인데 하여 보았자, 나 잘 몰라 할 것 같고 , 이게 우리들의 슬픔이다. 특히 내 아이들은 내가 쓴 책을 안 읽어 보았다., 우리가 슬퍼 지는 것 정말 많다 . 동강 난 조국에 가슴 아픈 사실이 희미 하여 질 것 같아, 슬프고, 우리 아이들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어 가는 것이 슬프고 ,
설명회에 모인 분들은 희미해진 기억 속에 바래진 생각을 주어 모아 한번쯤 쏘아 올리자 하는 마음일 것 같다. 그 자리에 모인 분들의 눈에는 그리움으로 젖어 있었다. 말은 안 하지만, 남편처럼 희미 해진 어머니 얼굴에 잊지 않으려고 덧그린 그림은 없는지 생각해 본다.
그 자리에서 제니 리 (오하후 은행 부행장) 한마디 한말이 가슴에 꼭꼭 박인다. 가는데 급급했지, 갔다 오고 나면 소기의 목적은 이룬 셈 하고 봉사 안하고 모임에 소홀 하지는 말자,. 가서 보고 온 고국의 발전상, 정체성, 변해가는 우리 문화, 등등을 알리는데 기수가 되어 보자, 단단히 각오를 해 본다.
필히 카메라를 소지 하여, 가는데 마다 사진을 찍어 두고, 듣고 보는 것을 잘 기입하여 알리자 각오를 단단히 하지만, 그게 잘 안 되는 것을 안다.. 몇 번 여행 할 때마다, 잔뜩 기대하고 가는데, 막상 가서 구경에 정신을 팔면 상황을 기입 한다는 것을 잊고 만다. 다음에 소설을 쓸 수는 없고., 나 자신에게 한심하다는 것을 종종 느끼었다. 이번 만은 그러지 말자, 다짐하여 본다.
자다가도, 나 한국 간다 하고 싶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 고국 방문단으로 한 국가 하고 자랑을 많이 했다 더러는 먼저 알고, 한국 간다며 하고 물어 오기도 한다.
이번 월요일 부 터 방학이라서 집에서 느긋이 놀고 있으면서 집에 있네 하여, 나 학교 방학이야 하니 그 친구 말하기를, “. 애나, 어른이나 방학이라면 좋아하나 봐요” 말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행 간다면 애나 늙은이나 좋아 지는 걸 어쩌랴, 소풍 날짜 받아놓고, 잠 못 자고 설치는 초등 학생 같다.. 나 한국 간다.